대선 국면에서 동네 마트가 하루아침에 ‘자영업 구제’의 상징처럼 부각되는 현실은 유통산업의 불안정성과 감성적 대응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유통은 국민 일상과 맞닿아 있는 산업이며, 원칙과 시스템 없이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구조적 개혁 없는 대증요법은 산업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뿐이다.
이재명 후보는 코로나 대출의 탕감을, 김문수 후보는 국가 부채가 늘더라도 자영업자를 살려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자영업 위기는 단순한 자금 부족이 아니라, 시장의 포화와 과잉 경쟁, 중복된 업종으로 인한 수익 모델 붕괴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탕감보다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팬데믹 이후 자영업자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정치권은 ‘빚탕감’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비효율성을 방치한 채 부채만 일부 덜어주는 방식은 또 다른 위기를 예고한다. 대출 구조, 경영 시스템, 시장 구조 모두를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 홈플러스의 구조조정과 매각 논란은 유통 산업의 투기화가 불러온 ‘예고된 인재’로 평가된다.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돼야 할 유통 시스템이 단기 수익 추구로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를 저버린 결과다. 글로벌 유통 기업들은 오히려 ESG 경영, 디지털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유통과 물류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신뢰의 흐름’이다. 월마트나 아마존은 대규모 데이터 기반 재고관리, 공급망 최적화 시스템을 도입하여 운영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는 여전히 감성적 정책과 단기적 접근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은 자영업자의 고통을 빚탕감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이 생존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자영업은 생존력이 아닌 ‘경쟁력’을 갖춰야 지속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의 자영업 폐업률은 OECD 평균을 웃돌며, 업종 생애 주기도 짧은 편이다.
정부의 ‘새출발기금’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신청자는 많지만 실질 감면 대상은 적고, 까다로운 심사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배제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여기에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겹쳐, 정책 신뢰도는 더욱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정책 실패의 공통점은 시스템 부재다. 필자는 과거 중소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해 체인스토어 모델, 공동물류센터 구축, 소상공인 연합조직 구성 등을 제안했지만, 정책 실행은 더디기만 했다. 운영 주체의 전문성과 실행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농협의 하나로마트가 성공하고, 나들가게 정책이 실패한 사례는 정책 아이디어보다 ‘운영 시스템의 질’이 더 중요함을 방증한다. 전문가 중심의 경영체계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제도도 지속되기 어렵다. 시스템 없는 지원은 사막에 물 한 방울을 붓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빚을 대신 갚아주는 감성적 정책이 아니라, 자영업의 경쟁력 자체를 키우는 구조개혁이다. 미국 IGA, 슈퍼밸류, 일본 세븐앤아이홀딩스처럼 본사 주도의 통합 시스템이 절실하다. 현장 기반의 경영지도와 데이터 중심의 전략 운영이 필요하다.
세계 유통산업은 이미 AI기반 수요예측, 무인매장, 마이크로 풀필먼트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유통은 ‘중소기업 보호’라는 명분 아래 변화에 소극적이다. 그러나 보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생존 가능한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 기존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시스템 중심 접근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감성적 지원보다, 경영 실무 교육, 공동 구매 플랫폼, 통합 물류 시스템 등이 우선돼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환의 문제다.
이제는 전문가가 주도하는 체계적 유통 경영 모델을 구축할 시점이다. 그래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자영업자도 생존할 수 있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오늘의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유통 산업의 위기는 곧 국민 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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