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해운업계가 선박 발주 호황을 맞이한 가운데, 한국만이 유독 선박 발주량이 급감하면서 산업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8년 763만 톤이었던 한국의 선박 발주량은 2023년 133만 톤으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세계 발주량이 두 배 넘게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선박 발주는 단순 수치를 넘어 해운사의 경쟁력, 물류 안정성, 친환경 규제 대응 능력을 모두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대선에서 공약으로 제시됐던 해운·조선 정책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재명 후보는 ‘친환경 해운강국 건설’을 내세우며 대체연료 선박 도입과 기술 지원을 약속했고, 김문수 후보는 ‘조선·해운 산업 통합 육성’을 통해 HMM 민영화 조기 마무리 및 선박 자산 확보 확대를 공언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뒤 양측 모두의 실행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친환경 해운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 강화에 따라 전 세계는 메탄올, 암모니아 기반 선박으로 전환 중이나, 국내는 기술 불확실성과 인프라 부족으로 발주 결정을 미루고 있다. 정부는 지원 대신 판단을 민간에 넘기며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는 모양새다.
반면 김문수가 주장했던 해운조선 통합 전략도 현실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HMM 민영화는 아직도 매듭짓지 못했고, 중소형 선사들은 자금 부족으로 신규 발주에 소극적이다. 일각에선 정책보다 시장 자율을 강조하며 장기 투자를 외면하는 분위기마저 확산되고 있다. 결국 양측의 공약 모두 현실화되지 않으며 한국 해운업은 세계 흐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조선업이 호황을 맞고 있음에도 해운업과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선박 대부분은 해외 선주가 발주한 것이며, 정작 국내 해운사는 자산을 줄이고 있다. 이는 산업 간 연결성을 강조했던 양측의 대선 공약이 사실상 공허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닌 실행이다. 해운업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려면 공약 수준에 머물지 않는 구체적 투자 유도책과 제도적 연계 전략이 절실하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대선 때의 약속이 단순한 표 얻기용 선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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