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의 파기환송심이 연기되었다. 재판부는 이번 결정을 헌법 제84조, 즉 현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조항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대통령에 관한 사안으로, 대법원은 최근 원심 일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의 연기 결정은 사법부가 본연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켜야 할지, 혹은 현실 권력에 따라야 할지를 두고 깊은 논란을 낳고 있다. 특히 이번 연기는 대선을 마친 뒤로 사실상 미뤄진 것이어서,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법부가 ‘헌법 정신’보다는 ‘권력과의 공존’을 택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편, 전국 법관대표자들이 모이는 법관대표회의는 오는 6월 30일 속행을 앞두고 있다. 지난 5월 26일 임시회의에서 상정된 안건들은 사법부의 독립성과 현 정권과의 관계 설정, 그리고 법관 내부의 자율성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법관회의는 이번 재판 연기 결정과 관련해 사법권 행사에 대한 자율적 기준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두고 깊이 있는 논의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사법부 스스로가 대한민국 헌정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법부가 권력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국민이 부여한 정의의 칼날을 스스로 내려놓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재판 일정의 변경이 아닌 헌정 질서의 균열로 기록될 수 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은 단지 교과서에 있는 이상이 아니라, 법관 개개인의 소명의식과 실천에서 비로소 구현되는 것이다.
사법부가 대통령의 형사소추 가능성 여부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고려가 아닌 헌법과 법률의 원칙이다. 만약 정치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판결을 미루거나 중단한다면, 이는 국민에게 '정의는 타이밍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우려가 크다.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특권 조항이라 해도 그 해석과 적용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자 의무인 만큼, 그 무게는 더욱 무겁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이재명 대통령 개인의 법적 책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사법부가 어느 정도까지 현실 정치의 중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의 양심과 헌법적 책임을 되새기며, 사법권의 권위와 야심을 지켜 나가야 할 시점이다. 그 어느 때보다 법의 이름으로 진실을 밝히는 사법부의 존재 이유가 국민 앞에 증명되어야 한다.
만약 사법부가 이번처럼 중요한 시점에 주저하고 물러선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사법적 퇴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정의를 유예한 역사는 결국 사법부의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자멸의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 사법부는 스스로의 권위를 지키고자 하는 야심을 가져야 하며, 오직 헌법과 법률 앞에서만 머리 숙여야 한다.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대통령이 누구이든, 권력이 얼마나 강하든, 정의는 때에 따라 굽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법부가 보여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특정 정치인을 향한 요구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법과 정의가 유지되느냐의 문제이며, 그 기준은 오직 법관들의 양심과 독립성 위에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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