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李荇, 1352~1432)은 고려 말 두문동 72현 중 한 인물로, 그의 삶은 부귀권세를 버리고 의리의 길을 선택한 고귀한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정몽주를 살해한 조영규를 “만세의 흉인”이라 비판하며 조선을 협력하지 않았던 그는, 결국 귀양살이를 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도 지조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행의 출생과 배경
이행은 1352년에 태어나 17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20세에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그의 시험관은 이색(李穡)으로, 이는 평생 사제 관계로 이어졌습니다. 이행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지조를 지키며, 제주 복속의 계기를 마련하는 등 외교적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조영규가 정몽주를 살해한 사건에 대해 “만세의 흉인”이라고 대놓고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그가 얼마나 원칙을 중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고려가 무너진 후, 그는 두문동에 들어가 은거하며 의리를 지켰습니다.
월송정과 이행의 시
월송정은 이행과 깊은 인연이 있는 장소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가 소를 타고 다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 ‘평해 월송정’은 이곳에 걸려 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여유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그는 동해의 밝은 달을 소나무에 비유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동해의 밝은 달이 소나무에 걸려 있네 / 소를 타고 돌아오니 흥이 더욱 깊구나 / 시 읊다가 취하여 정자에 누웠더니 / 선계의 신선들이 꿈속에서 반기네.”
풍수적 특성
월송정이 위치한 울진 지역은 풍수적으로 매우 유리한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주요 특징입니다.
지리적 위치: 월송정은 바닷가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외부의 해로운 기운을 차단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으는 데 기여합니다.
산과 물의 조화: 이 지역은 바다와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물의 흐름은 생명력과 기운을 상징합니다. 이는 지역 주민들에게 안정감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안산과 묘역의 배치: 이행의 묘소는 월송정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자연의 기운을 잘 받아들이는 장소로 후손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후손들의 노력과 기념
이행의 후손들은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음력 10월 10일마다 제사를 지내며, 이행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후손들 중에는 이주형(제헌의회 의원), 이우성(퇴계학연구원장), 이운성(시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행의 조부와 손자까지 함께 모신 단향비가 밀양에 세워져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 비석은 후손들이 그를 잊지 않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론
이행의 이야기는 고려에 대한 강한 의리와 그리움을 상징합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후손들에게 중요한 교훈과 자부심을 남깁니다. 이행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를 기리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며, 이러한 노력들이 잘 보존되고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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